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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 리뷰

영화 고지전, 실제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한 참전용사의 말을 듣다

by 멋과풍류 2020. 3. 19.

영화 고지전. 평소 전쟁 영화를 좋아라하는 난, 개봉과 동시에 바로 예매했다. 

그리고 홀로 고지전을 즐겼다. 

 

영화 고지전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한국전쟁 발발 당시 치열했던 '애록고지(백마고지?)' 탈환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동족상잔의 비극.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인물 간의 심리전과 참담함을 그리고 있는 전쟁영화다. 

 

2011년 개봉한 고지전, 그 후로 5년 뒤 난 우연히 백마고지 전투에 참가한 참전용사들과 마주 앉을 기회를 얻었다. 

2018년 여름, 어느 지역 어느 지회에서 만난 노병들.

 

한 분은 눈이 실명됐고, 한 분은 거동이 불편했다. 노병들에게 전쟁의 상흔은 진행형이었다. 

 

"그때 당시 난 무전병이었어. 어떻게든 탈환을 목표로 했는데, 앞에서 뒤에서 전우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졌지."

제주도에서 96일 동안 군사교육을 받은 A씨는 8부능선 사투를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A씨는 그 능선 탈활만이 승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빗발치는 총알세례에 그는 시체를 넘고 또 넘었다. 

그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처절했는지..."라며 결국 말끝을 흐렸다.

최근에는 6.25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생각 보다 많아 씁쓸하다고...

 

옆에 계셨던 B씨는 지난날을 회상하는 A씨의 말에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세요?"라고 묻자 "나도 거기 있었어"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B씨는 "하늘을 뒤덮은 폭격으로 산은 벌거숭이가 됐고, 그나마 남은 나무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며 "강원도 철원 쪽으로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했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B씨의 말이다. 

참전용사들은 "영화에서도 그 참담함이 느껴지는데, 실상은 그 보다 더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 세대는 전쟁이 뭔지 몰러...얼마나 무서운지..."

 

무거운 얘기가 오가는 가운데 노병들은 무용담도 빼놓지 않았다. 

"그때 말이여~"

"1.4 후퇴 때 내가 뛰어가니께~"

 

극과극. 산자와 죽은자의 명암이 갈리는 순간, 멍해졌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의 초라한 삶,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들을 잊고 지낸 지난 날들은 물론, 앞으로도 잊힐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커피 한 잔이 식어갈 때 즈음, 

 

"자네도 어서 볼일보러 가야하지 않는가?"

지회장님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연신 전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해인 2019년 여름, 모르는 번호가 찍힌 스마트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더운 날씨 탓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누구세요?"

"잘지내시죠~? 올 여름에도 들려주시는가요? 더운데 잠깐 들려서 국시 한그릇 먹고 가요."

 

아뿔싸.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금세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고 지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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